물가 상승이 국가의 무역 경쟁력을 약화시킴에 따라 수출은 감소하고 수입이 증가하며 금은 다시 유출되기 시작 할것입니다. 역으로 무역적자 국가들은 금의 유출을 경험하게 될것입니다. 금이 은행 시스템에서 유출됨에 따라 신용은 수축될 것입니다. 신용수축은 경기침체를 가져오고 물가는 하락 조정 될것입니다. 신용수축은 경기침체를 가져오고 물가는 하락 조정 될것입니다. 물가하락은 적자국가들의 무역 경쟁력을 높일 것이고, 결국 무역수지에 대한 균형이 회복될 때까지 금은 다시 유입되기 시작할 것입니다.
금본위제도 하에서 무역 불균형은 지속 불가능하고 자기조정 능력이 있습니다. 무역 불균형은 적자 국가에게 야기하는 경침체 압력 때문에 지속 불가능합니다. 동시에 무역 불균형은 두 국가의 상대가격 변화를 통해서 자기조정의 과정을 겪데 됩니다.
또한 금본위제도는 정부의 예산적자 발생을 방지합니다. 이용 가능한 신용이 제한되어 있다면,정부차입은 이자율 상승을 야기하여 민간 부분의 차입비용이 상승함에 따라 차입과 이쥰 가능한 투자를 하기가 더 어렵다는 것을 발결하게 하여 경제에 부정적인 결과를 가져 올 것입니다. 정부차입은 신용시장으로 부터 민간 부분을 구축하기 때문에 이러한 과정은 구축현상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정부 예산 적자 역시 무역적자와 금 유출을 가져오게 됩니다. 초기에는 수입성향이 경제 성장률에 따라 증가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높은 정부 지출은 경제를 자극하고 외국상품에 대해서 더많은 수요를 가져오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다시 한번 경제 성장이 가속화되고 무역적자가 확대됨에 따라 금이 극가에서 유출되고 이자율은 상승하여 경기침체와 물가 하락이 나타나 다시 국가의 무역 경쟁력과 무역수지가 회복될 때까지 신용은 축소될 것입니다.이러한 적자지출의 바람하지 않은 부작용을 알고 있기 때문에 적어도 국가가 평온한 상태에 있는 한 정부는 일반적으로 균형예산을 유지하려고 합니다.
브레튼 우즈 시스템은 금본위제도에 가까운 대체물이었습니다. 브렌트 우즈 시스템이 전후에 국제 금융 시스템의 안정적인 기능을 확보 하기 위해서 2차 세계대전의 마지막 달에 설립되었을 때, 미국 달러가 금 1온스당 35달로 고정되고 모든 다른 주요 통화들은 고정 환율로 달러에 고정되었습니다. 달러의 가치는 미국 정부의 금 보유에 의해서 보증되었고 외국 정부가 요구하면 금 1온스를 35달러로 교환할수 있었습니다.
이러한 시스템의 목적중 하나는 국가들이 무역 이익을 얻기위해서 자국의 통화가치를 절하를 막는데 있습니다.1930년대에 수많은 국가들이 행한 평가절하는 무역 장벽의 증가와 1930년대의 국제무역 붕괴에 공헌했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브렌트 우즈에서 채택된 협정은 의외로 20년 이상 잘 작동했지만 1960년대 후반기에 손상되기 시작했습니다. 그 당시 미국 기업의 막대한 해외투자와 베트남에서 미국의 군비 지출 증가를 포함하는 수많은 요인들이 국제수지를 악화시키는데 일조했습니다. 늘어나는 달러를 보유한 다른 국가들은 미국의 연방준비은행(FRB)에서 자신들이 보유한 달러를 금으로 교환하기 시작했습니다. 초기에는 교환된 금액이 상대적으로 적었기 때문에 거의 관심사가 되지 않았으나 1960년대 후반에는 워싱턴에서 불안감을 느끼기 시작했습니다.
1971년까지 포트녹스에 있는 연방 금보관소에서 금의 유출이 가속화되었습니다. 닉슨 대통령은 1971년 8월에 달러를 금과 태환 하는 것을 일시 정지시켰습니다. 시스템을 보완하려는 계속된 시도들이 실패했고, 1973년에 주요 무역 강개국들 상대국에 대해 그들의 통화를 자유롭게 변동시키는 것을 허용함으로써 브레튼 우즈 시대가 막을 내렸습니다.
브레튼 우즈 시스템은 고전적 금본위제도와 마찬가지로 자동적으로 지속적인 무역 불균형을 막을 수 있는 조정기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뷸균형은 국제적으로 용인된 가치 저장수단(금 또는 금태환 가능한 달러)의 국경간 이전과 국제적으로 용인된 가치 저장기능을 수행했고 결국에 무역과 재정수지 균형을 회복하는 방식으로 국내물가 수준의 변화를 발생시켰습니다.
1970년대 초에 브레튼 우즈가 붕괴되었을 때, 자동조정기능은 더이상 작동되지 않았습니다. 기능이 상실되었을 때, 정부예산 적자는 극적인 증가를 가져왔고 국가들 사이의 경상수지 불균형은 쉽게 줄일 수없을 정도로 엄청났습니다. 1982년 미국의 예산적자는 처음으로 1,000억달러를 초과 했습니다. 그로부터 2년 후에 미국의 경상수지 적자 역시 1,000억 달러를 넘었습니다. 세 자리 수의 쌍둥이 적자는 오랬동안 지속되었습니다.
3편으로 이어서 게재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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