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산·저장 한번에… 뇌 닮은 ‘뉴로모픽 반도체’ 시대 온다
메모리 반도체·프로세서 통합
소자 집적도 높아 저전력·고성능 구현
자율주행 넘어 AI 로봇 개발 등에 활용
IBM·인텔·삼성·SK하이닉스 개발 속도
인텔이 지난 2017년 선보인 포호이키 스프링스. 뉴로모픽 반도체인 로이히 칩 768개를 합쳐 포유류 수준의 두뇌를 구현했다. /인텔 제공
반도체 업체들이 메모리 반도체와 프로세서를 하나로 통합해 사람의 뇌처럼 연산하는 뉴로모픽(Neuromorphic·뇌신경모방) 반도체 개발에 속도를 내고 있다. 저전력으로 고성능을 낼 수 있는 뉴로모픽 반도체가 급격하게 늘어나는 데이터를 처리할 수 있는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기 때문이다. 뉴로모픽 반도체는 자율주행, 사물인터넷(IoT)을 넘어 인공지능(AI) 로봇 개발 등으로 폭넓게 활용되고 있다.
24일 전자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뉴로모픽 반도체를 미래 기술로 정하고, 기술 개발을 진행 중이다. 지난해 삼성전자는 하버드대 연구진과 뉴로모픽 반도체 비전을 제시한 논문을 네이처 일렉트로닉스에 게재하기도 했다. 삼성전자는 뇌 신경망에서 뉴런이 보내는 전기 신호를 나노전극으로 측정해 복사하고, 파악된 내용을 반도체에 적용하는 방법으로 뉴로모픽 반도체를 만들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최근 D램과 낸드플래시 메모리의 장점을 합친 자기저항메모리(M램)를 기반으로 한 인-메모리(In-Memory) 컴퓨팅을 세계 최초로 구현했다. 인-메모리 컴퓨팅은 데이터 연산과 저장을 메모리 내에서 병렬로 연산하는 기술이다. 삼성전자는 인-메모리 컴퓨팅 연구가 뉴로모픽 반도체 개발에 도움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뇌 신경 네트워크의 시냅스 작동 방식을 모사한 트랜지스터 모습. /연세대 제공
현재 운영되는 컴퓨팅 기술은 연산과 저장(단기·장기)을 담당하는 반도체를 직렬로 연결해 사용하고 있다. 연산하는 중앙처리장치(CPU)와 저장하는 메모리 반도체가 각각의 임무를 별도로 수행하는 방식이다. 반도체 미세공정이 발전하면서 CPU와 메모리 성능은 개선되고 있지만, 두 반도체를 연결해 데이터를 주고받는 성능은 큰 변화가 없는 상태다.
반면 뉴로모픽 반도체는 인간의 신경망 구조와 같이 모든 칩을 병렬로 연결해 연산과 저장을 한 번에 할 수 있는 기술을 말한다. 연산과 저장이 가능한 인-메모리 컴퓨팅과 동일한 개념이지만 뇌 신경망 구조를 활용했다는 점에서 인-메모리 컴퓨팅과 비교해 진화한 기술이다. 뉴로모픽 반도체 내 소자는 인간 뇌의 뉴런(연산), 메모리는 시냅스(기억) 역할을 담당한다.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데이터를 한 번에 저장하고 처리하는 뉴로모픽 반도체의 중요성이 강조되는 이유다.
뉴로모픽 반도체의 최대 장점은 기존 반도체와 비교해 높은 집적도(1개의 반도체 칩에 들어가는 소자 수)에 있다. 한국과학기술원(KAIST) 전기 및 전자공학부 연구팀이 지난해 8월 개발한 뉴로모픽 반도체의 경우 시중에 나온 CPU보다 집적도가 3500배 높다. 기존 CPU 대비 연산 처리 능력이 수천배 빠르다는 의미다.
사람의 뇌 신경망을 모방하는 뉴로모픽 반도체 관련 모습. /삼성전자 제공
IBM이 뉴로모픽 반도체 개발에서 가장 앞선 업체로 평가받고 있다. IBM은 2014년 뉴로모픽 반도체 트루노스를 선보였다. 다만 뉴로모픽 반도체의 장점인 저전력과 정확도를 구현하지 못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인텔은 IBM을 제치고 뉴로모픽 반도체에서 앞서가고 있다. 인텔은 지난 2017년 뉴로모픽 반도체 로이히(Loihi) 칩을 선보였는데, 검색 및 연산 처리 능력이 기존 CPU보다 1000배, 전송 속도는 100배 이상 빠르다. 인텔은 지난 2020년 로이히 칩 760여개를 이어붙인 뉴로모픽 연구 시스템 포호이키 스프링스를 공개했다. 포호이키 스프링스는 동물이 냄새를 맡을 때 뇌에서 일어나는 전기 신호를 복사해 뉴로모픽 반도체에 적용한 것으로, 생쥐에 맞먹는 후각 능력을 갖고 있다.
국내에서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뉴로모픽 반도체 개발에 속도를 내고 있다. SK하이닉스는 지난 2016년 미국 스탠퍼드대와 공동 연구개발 협약을 맺고 관련 연구를 시작했다. SK하이닉스는 SK텔레콤, SK스퀘어와 SK 정보기술통신(ICT) 연합을 만들고 AI 반도체(사피온) 개발에 참여한 상태다. SK하이닉스는 차세대 AI 반도체인 뉴로모픽 반도체 시장을 선점해 나간다는 계획을 세웠다.
한편 뉴로모픽 반도체를 포함한 전체 AI 반도체 수요는 모바일, 자동차, 가전 등을 넘어 서버, 클라우드 등 데이터센터로 꾸준히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 시장조사업체 가트너는 AI 반도체 시장이 지난 2020년 331억4800만달러(약 39조5919억원)에서 2025년 767억7000만달러(약 91조6940억원)로 성장할 것으로 예상했다.
☞ 뉴로모픽 반도체
인간의 뇌 구조를 그대로 모방해서 만든 반도체 칩을 의미한다. 뉴로모픽의 사전적 의미는 ‘신경의 형태를 가진’이다. 1990년대 뇌의 신경세포인 뉴런(neuron)과 뉴런를 이어주는 연결고리인 시냅스(synapse)의 신호전달 방식이 반도체의 트랜지스터 동작 방식과 유사하다는 점이 확인됐다. 반도체업계는 뇌의 작동 방식을 닮은 반도체 칩이 차세대 반도체 기술이 될 것으로 보고 2000년대부터 본격적인 개발에 돌입했다. 뉴로모픽 반도체는 연산을 담당하는 중앙처리장치(CPU)와 정보를 저장하는 메모리가 별도로 존재하는 기존 컴퓨팅과 달리 사람의 뇌처럼 연산과 저장을 동시에 할 수 있어 전력 소모와 연산 속도가 빠르다는 장점이 있다. 이에 따라 대용량 데이터를 병렬로 연결해 복잡한 연산, 추론, 학습 등이 가능하다. 뉴로모픽 반도체는 자율주행차, 사물인터넷(IoT), 음성인식, 인공지능(AI), 로봇 등 차세대 기술에 사용될 것으로 전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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