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영체제(OS)와 함께 발전해 온 디스플레이
“형태는 기능을 따른다.(Form ever follows Function)”
20세기 초 미국의 건축가 루이스 헨리 설리번의 유명한 말이다. 하지만 거꾸로 기능이 형태를 따를 때도 있다. 디스플레이 장치가 그렇다. 디스플레이는 사용자가 원하는 기능에 따라 형태가 갖춰지기도 하지만, 운영체제(Operating System, OS)라는 틀에 맞춰 기능의 수준이 달라지는 과정도 반복해 왔기 때문이다. OS와 디스플레이는 서로의 필요에 따라 발전의 궤를 같이해 왔다. 이 둘의 관계는 어떻게 시작되었고 앞으로는 어떤 모습일까?
1940년대, 처음에는 디스플레이가 없었다
▲ 윌리엄스 튜브 (출처: WIKIPEDIA)
세계 최초의 컴퓨터로 불리는 ‘에니악(ENIAC, 1946)’에는 모니터가 없었다. 정말 빠른 ‘계산기’를 만들 생각으로만 설계했기 때문이다. 에니악에 ’윌리엄스 튜브(Williams tube, 1946)‘라는 CRT 장치가 사용되기는 했지만 디스플레이 장치가 아니라 메모리 장치였다.
음극선관을 말하며 일명 브라운관이라고도 한다. 전기신호를 전자빔의 작용에 의해 영상이나 도형, 문자 등의 광학적인 영상으로 변환하여 표시하는 특수진공관이다.
이후 1959년에 출시된 소형 메인 프레임 컴퓨터 ’PDP-1’은 초기 컴퓨터 문화에 큰 영향을 끼쳤다. 단순한 계산용이 아닌 원형 CRT 모니터를 비롯해 다양한 입출력 방식을 채택했고, 사람과 컴퓨터가 마치 상호 작용하는 듯한 느낌을 준 것이다.
PDP-1에 자극을 받은 프로그래머들은, 이 기기를 기반으로 세계 최초의 컴퓨터 게임, 워드 프로세서 등을 만들었다. 이를 계기로 프로그래밍 결과를 ‘출력’하는 용도로 디스플레이 장치를 쓸 수 있다는 아이디어가 널리 퍼지기 시작했고 1970년대부터 ‘모니터’는 컴퓨터에서 추가 부속 장치가 아닌 기본 장치로 여겨지게 됐다.
1960년대, 디스플레이로 그래픽을 표현하다 ‘Apple2’의 등장
1969년 처음 출시된 유닉스(UNIX) OS는 1973년 C 언어로 재작성된 이후, 다른 컴퓨터로 이식이 쉬워 널리 퍼지게 된다. 초기 유닉스는 문자 기반 명령줄 인터페이스(Command Line Interface, CLI)를 비롯하여 많은 일을 문자로만 처리하는 특징을 가지고 있었기에, 모니터는 문자만 제대로 보여 주면 되었다.
하지만, 1977년 출시된 Apple2 컴퓨터는 컴퓨터 산업을 완전히 바꿔 놨다. 제품이 대규모로 팔리면서 컴퓨터를 가전제품처럼 생각하게 만들었고, 지금 쓰이는 애플리케이션의 원형이 되는 수많은 S/W가 만들어지는 플랫폼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Apple2는 Apple-DOS(Disk Operating System)라는 OS를 사용했는데 디스플레이 해상도는 텍스트 모드일 경우 한 줄에 40자씩 24행, 고해상도 그래픽을 보여줄 경우 280×192픽셀에 6가지 색을 쓸 수 있었다. 문자열 기반의 디스플레이가 주류였던 당시로써는 컬러 그래픽을 지원하는 대중적인 OS와 컴퓨터의 등장 자체가 혁신적이었다. 그래픽 모드를 지원하는 컴퓨터가 무척 드물었던 때였으므로 Apple2는 비디오 게임 유저까지 이 제품에 매력을 느끼게 했다.
1980년대, 본격적인 컬러 디스플레이 PC 시대 개막
1981년 출시된 IBM PC는 MS-DOS(Microsoft Disk Operating System)를 채용함과 동시에 그래픽 기능을 메인보드에 내장하지 않고, 별도의 비디오 카드에서 처리하는 디자인을 채택하게 된다. 기존에 Apple2의 OS가 컬러 디스플레이를 지원했지만, 높은 컴퓨터 가격 탓에 대중적으로 많이 보급되지는 못했던 것에 비해 IBM PC의 등장은 보다 손쉽게 그래픽 표현이 가능한 컴퓨터의 대중화를 앞당겼다.
IBM이 제안한 그래픽 표준은 텍스트 카드인 MDA와 4색 컬러에 640×200 해상도를 가진 CGA 그래픽 카드였다. 물론, 실제 많이 사용된 것은 단색에 최고 720×348 해상도를 가진 허큘리스 그래픽 카드였다. 업무용 S/W를 쓸 때는 컬러보다 고해상도가 더 필요했기 때문이다.
▲ IBM PC
컴퓨터 모니터 역시 녹색/황색/백색을 쓰는 단색 모니터가 주류였다. 이후 1987년, IBM이 640×480 해상도에 최대 256컬러를 지원하는 VGA(Video Graphics Array) 그래픽을 내놓으면서 본격적인 컬러 디스플레이 시대가 열렸다. 다만 텍스트 기반의 OS인 DOS에서는 고화질 그래픽 구현에 제약이 많아 그래픽 특성이 필요한 게임 등의 S/W 제작은 여전히 어려웠다.
1990년대, 윈도 OS와 함께 높아진 디스플레이 스펙
별다른 변화 없이 흘러가던 컴퓨터 디스플레이 시장은, 1995년 윈도95와 일반 소비자용 3D 그래픽 카드가 출시되면서 큰 변화를 맞는다. 윈도95는 일반 PC에서 GUI를 손쉽게 쓸 수 있는 대중적인 OS로 자리 잡았고, 기존 DOS용 S/W도 호환돼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특히 OS 차원에서 3D 게임을 지원하는 ‘다이렉트X’ 기술을 탑재하면서 ‘스타크래프트’, ‘디아블로2’와 같은 게임의 성장을 촉진했고 이는 다시 그래픽 품질에 대한 이용자의 눈높이를 높이는 결과를 가져왔다.
MS-윈도 시리즈가 OS로 자리 잡으며, 표현 가능한 해상도는 640×480픽셀부터 그래픽 카드의 성능에 따라 800×600, 1024×768 그리고 그 이상까지도 가능해졌다. 또 표현 가능한 색상도 256컬러를 넘어 6만5천컬러, 1670만컬러와 같이 크게 늘었다. 문자열을 기반으로 했던 UNIX나 DOS 시절을 떠올리면, OS의 발전에 따라 디스플레이의 수준도 함께 높아져 온 것을 알 수 있다.
2000년대, 옷을 바꿔 입기 시작한 OS
▲ 삼성 슬레이트 PC 시리즈 7
2007년 이후 시장에서 급성장한 스마트폰은 PC에도 영향을 끼쳤다. 1970년대 이후 한 번도 경쟁자를 만나본 적 없는 ‘키보드&마우스’ 입력 장치가, ‘손가락 터치’란 경쟁자를 만났다. 터치스크린의 등장은 IT 기기의 폼팩터를 다양하게 만들었다. 태블릿을 비롯해 화면을 뒤로 접어 태블릿처럼 쓰는 노트북 컴퓨터, 키보드가 분리되는 제품들이 등장했다.
PC에서 활약하던 OS는 기기의 형태에 맞춰 진화를 이뤘다. 애플의 Mac OS는 아이폰용 iOS의 뿌리가 되었으며, 스마트폰과 상관없어 보이는 리눅스(Linux)는 안드로이드 OS 같은 스마트폰 OS의 기반이 되었다. MS-윈도는 윈도 스마트폰의 OS로 사용되기도 했다.
OS가 모바일 기기에 탑재되면서 기기에 맞는 새로운 해상도와 규격들이 등장했다. 16:9의 화면비뿐만 아니라 18.5:9, 19:9 등 다양한 해상도의 변형을 OS가 지원하고, 모바일에 특화된 HDR(High Dynamic Range) 기준도 생겨났다. 기기의 형태가 디스플레이의 기능을 변화시키는 예이다. 또 모바일과 태블릿, PC 간에 사용 연동성을 높이기 위해 기기별 OS 간에 호환성을 부여하는 경우도 많아지고 있다.
21세기, IT기기용 디스플레이는 어떻게 진화할까
21세기 들어와 컴퓨터 하드웨어는 눈부시게 발전했다. OS가 지원하는 디스플레이 규격이 다양해지면서 디스플레이 제품 형태도 바뀌었다. 예전엔 4:3이었던 모니터 화면 비율이 영상감상에 적당한 16:10로, 듀얼 모니터처럼 사용이 가능한 32:9 화면비 등으로 다양해졌다.
▲ 삼성 게이밍 모니터
4K UHD 고해상도를 지원하는 모니터도 증가하고 있고, 고화질의 QLED 기술과 게이밍 전용으로 화면 재생률을 두 세배 높인 최신 디스플레이 기술도 이미 모니터에 적용되었다.
앞으로는 어떻게 변할까? 일부 사람들은 제로터치 UI(Zerotouch UI)라는 말을 하면서,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아도 되는 새로운 UI가 곧 나타날 것처럼 얘기한다. 그런 시대에, 디스플레이는 어느 곳이든 있는 듯 없는 듯 존재한다. 평소에는 유리나 거울, 평범한 사물이지만, 필요할 때마다 투명 디스플레이, 거울 디스플레이 또는 사물의 표면에 정보를 표시해 주는 스마트 기기로 변한다.
▲ 삼성이 공개한 219형 크기의 ‘더 월’
세계 최초의 모듈러 TV ‘더 월(The Wall)’처럼 필요할 때마다 모듈 형식으로 사이즈를 조절하며 기능에 따라 형태를 바꾸는 디스플레이도 늘어날 것이다. 앞으로 어떤 세상이 다가오든, 하나는 분명하다. 미래에도 우리는 여전히, 디스플레이를 통해 세상을 만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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