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자 많이 먹으면 지구가 건강해진다
우리 조상들은 흉년이 들면 감자나 고구마를 먹으며 살아남았다. 그런데 최근 환경을 위해 주식에서 감자나 고구마의 비율을 높여야 한다는 연구결과들이 나오며 구황작물에서 친환경 작물로 재인식되고 있다. 강석기 제공
말복 언저리였던 날 차를 타고 가다 무심코 한 건물에 있는 식당 입간판이 눈에 들어왔다. 복날이면 서울에서도 먹으러 온다던 유명한 ‘ㅇㅇ보신탕’이 있던 건물인데 지금은 다른 이름이 걸려있다. 식당이 바뀐 건 아니고 수년 전 이름을 바꾼 것이다. 식당 이름에 ‘보신탕’이 있으면 오히려 역효과인가보다.
1988년 서울올림픽 때 한 프랑스 배우가 “한국인은 개를 잡아먹는 야만인들”이라고 말하자 국내 여론은 ‘다른 문화를 존중하지 않는 무례’라며 분노했고 그 뒤로도 복날이면 여전히 보신탕집이 문전성시였다. 그러나 개가 반려동물로서 ‘가족의 일원’이라는 인식이 널리 퍼지면서 지금은 복날에도 “보신탕 먹으러 가자”고 말을 꺼내기 어려운 분위기다. 인식이 바뀌면 행동도 바뀌는가 보다.
최근 연예인급 지명도가 있는 몇몇 대기업 총수들이 대체육 사업에 뛰어들었거나 그럴 계획이라는 기사를 보면서 머지않아 보신탕 정도는 아니지만 육류 소비도 꽤 줄어들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최근 급격한 기후변화의 원인인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려면 고기를 덜 먹어야 한다는 주장에 동의하는 사람 주변에 다양하고 맛 좋은 대체육 식품이 있다면 구매 행동이 바뀔 것이다.
그런데 최근 주식(staple food)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갖게 한 논문이 학술지 ‘네이처 음식’에 실렸다. 오늘날 쌀이나 밀 위주의 주식에 감자의 비율을 높이면 사람의 건강뿐 아니라 지구의 건강에도 좋다는 내용이다. 물론 친환경 효과는 육식을 채식으로 대체하는 것보다 작지만 그래도 생각보다 크다.
난징대가 주축이 된 중국 공동연구팀의 결과로 오늘날 중국의 주식 구성에서 감자의 비율을 꾸준히 높인다면 경작 과정에서 이산화탄소 배출과 물 사용 등 환경에 미치는 전반적인 부정적 영향을 17~25% 줄일 수 있다는 내용이다.
○ 고구마는 좋고 감자는 나쁘다?
중국 지역에 따른 4대 작물의 환경 영향을 보여주는 지도다. 같은 칼로리를 얻을 때 경작지 면적, 이산화탄소 배출량, 물 사용량을 나타낸다(위에서 아래로). 경작지 면적은 쌀이 가장 덜 필요하고 이산화탄소 배출량, 물 사용량은 감자가 가장 적다. 다만 지역 편차가 크다. ‘네이처 음식’ 제공
현대인들은 감자에 대해서 부정적인 인식이 더 큰 것 같다. 감자가 비만과 당뇨, 심혈관질환의 위험성을 높이므로 섭취를 자제하라는 의학계의 권고와 이를 재생산한 언론의 영향이 클 것이다. 그 여파 때문인지 서구사회는 지난 수십 년 사이 감자 소비량이 꾸준히 줄어드는 추세다. 그런데 이런 주장은 왜곡된 측면이 있다. 햄버거 같은 패스트푸드와 콜라 같은 탄산음료와 함께 한 기름에 튀긴 감자인 프렌치프라이에 대한 비난이 감자라는 작물로 일반화된 것이다.
반면 고구마는 감자와 여러모로 비슷한 작물임에도 감자와는 반대로 살이 빠지는 음식으로 인식돼 다이어트를 한다며 밥이나 면 대신 고구마 한두 개로 끼니를 때우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사실 감자도 이런 식으로 먹으면 살을 빼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100g 기준 감자의 식이섬유 함량은 2.2g으로 고구마(3g)에 못지않고 열량도 77칼로리로 고구마(86칼로리)보다 오히려 적다. 만일 고구마맛탕이 햄버거와 콜라 파트너였다면 고구마가 비만 유발 음식으로 낙인찍히지 않았을까.
실제 감자는 올바른 조리법으로 적당량을 먹으면 몸에 좋은 음식이다. 녹말 덩어리라 속이 든든하고 식이섬유도 많아 장이 편하다. 또 칼륨과 비타민C 등 각종 미량 영양소도 풍부하다. 게다가 감자 재배는 벼나 밀에 비해 까다롭지 않아 다양한 기후와 척박한 땅에서도 잘 자란다. 과거 흉년이 들면 우리 조상들은 감자와 메밀, 고구마 같은 구황작물을 먹으며 살아남았다.
오늘날 한국에서 감자는 된장찌개나 카레 같은 요리에 넣는 채소로 쓰일 뿐 밥을 대신해 주식으로 먹는 경우는 거의 없다. 그러나 지구촌의 연간 감자 생산량은 3억6800만t으로 옥수수와 밀, 쌀에 이어서 네 번째다. 옥수수는 주로 사료나 가공식품의 원료로 쓰이므로 사실상 3위라고 볼 수 있다. 실제 지구촌 13억 인구가 감자를 주식으로 삼고 있다.
○ 벼와 밀보다 친환경 작물
중국은 지난 2015년부터 ‘감자를 주식으로(Potato-as-Staple-Food)’라는 정책을 펼치고 있다. 식량안보를 위해 벼와 밀에 집중된 주식을 다양화하기 위해서다. 감자가 선택된 건 기후변화의 충격을 덜 받고 영양도 풍부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번에 감자농사가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한 결과 벼농사나 밀농사, 옥수수농사보다 친환경적이라는 사실이 밝혀진 것이다. 주식에서 감자의 비중이 높아질수록 사람뿐 아니라 지구의 건강도 좋아지는 셈이다.
연구자들은 4대 작물인 벼와 밀, 옥수수, 감자가 경작지 효율, 이산화탄소 배출량, 물 사용량 등 세 측면에서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평가했다. 중국의 4대 작물 경작지 면적은 9800만 헥타르(2015년)로 남한 면적의 10배나 된다! 옥수수 재배지가 39%로 가장 넓고 벼가 31%, 밀이 25%, 감자가 6%다.
경작지 효율을 보자. 단순히 수확량을 기준으로 보면 감자의 효율이 단연 높다. 그러나 쌀과 밀, 옥수수는 수분이 각각 12%, 13%, 10%인 반면 감자는 수분이 75%나 된다. 따라서 칼로리당 경작지 면적으로 비교해야 공평하다. 그 결과 쌀이 메가칼로리당 569밀리핵타르로 가장 효율적이었고 옥수수가 722, 감자가 726, 밀이 842로 나왔다. 다만 기후나 지형, 토질에 따라 같은 작물이라도 지역 편차가 크다.
다음으로 경작 과정에서 나오는 온실가스 배출량을 보면 이산화탄소 환산 기준 5억5138t(2015년)으로 쌀이 43%, 밀이 24%, 옥수수가 29%, 감자가 4%다. 칼로리당 배출량을 보면 감자가 1킬로칼로리에 0.25으로 가장 적었고 옥수수가 0.33, 밀이 0.46, 벼가 0.47이었다.
끝으로 물 사용량을 보면 감자가 메가칼로리당 0.59㎡로 가장 적었고 옥수수가 0.62, 밀이 0.64, 쌀이 0.69였다. 2015년 기준 경작 현황을 봤을 때 감자가 친환경 점수를 좀 더 받을 수 있음을 알 수 있다.
당분간은 중국 인구와 육식 비중이 늘 것이기 때문에 주식 작물 필요량은 2015년 6억5791만t에서 2030년 9억518만t으로 35%나 늘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4대 작물의 비율이 유지된다면 지금까지의 추세대로 매년 생산성이 조금씩 높아진다고 해도 경작지가 17% 더 필요하고 온실가스 배출량은 20%, 물 사용량은 19% 더 늘어날 것이다.
그런데 ‘감자를 주식으로’ 정책이 성공적으로 실행되면 2030년 중국의 4대 작물 생산량 비율은 쌀이 31%, 밀이 19%, 옥수수가 34%, 감자가 15%로 바뀔 것이다. 이때 감자의 생산성은 2015년 헥타르당 17t에서 2030년 38t으로 2배 이상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이미 헥타르당 47~49t에 이르는 미국 등 농업선진국에 비해 감자 생산성이 크게 낮아 재배 품종을 바꾸는 등의 노력으로 개선할 여지가 많다.
한편 같은 작물이라도 경작지 효율과 온실가스 배출량, 물 사용량의 지역 편차가 크므로 각 지역에 더 적합한 작물로 경작지를 개편하면 환경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을 더 줄일 수 있다. 이런 요인들이 더해지면 2030년 지금 추세대로 재배하는 것과 비교할 때 경작지 면적과 물 사용량은 각각 17% 줄고 온실가스 배출량은 25%나 줄일 수 있는 것으로 나온다.
교신저자인 충칭대 양이 교수는 이메일에서 논문 파일을 보내주며 “우리가 사람들에게 식단을 바꾸라고 강요하는 건 아니다”라며 “주식으로 감자를 더 먹을 때 환경에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 제시하는 것일 뿐”이라고 덧붙였다.
○ 감자의 감점 요인
수천 년 전 남미 안데스 산지에서 2배체 야생 감자를 작물화할 때부터 영양번식 방법(씨감자)을 택했고 그 결과 숨어있는(염색체 한쪽에만 있으므로) 유해한 돌연변이(빨간색 X)가 누적됐다(왼쪽). 이 과정에서 나온 재래종 4배체 감자를 개량해 현대 품종을 얻었고 역시 씨감자로 재배하고 있다(오른쪽 위). 그런데 최근 게놈 디자인 기법으로 유해한 돌연변이를 최소화한 근교계 감자를 만드는 데 성공했고 서로 다른 근교계 감자를 교배해 부모보다 우세한 잡종 감자를 얻었다(오른쪽 아래). 씨앗을 뿌려 감자 농사를 짓는 시대가 머지않았다. ‘셀’ 제공
그렇다고 감자가 모든 면에서 쌀이나 밀보다 좋은 건 아니다. 감자는 재배과정에서 병원체에 취약하고 수확한 뒤에는 보관성이 떨어진다. 그리고 1년생 작물임에도 씨앗이 아니라 덩이줄기인 씨감자를 심어 재배해야 한다. 이런 이유로 수확량의 10%는 손실을 본다. 만일 벼나 밀처럼 씨를 심어 재배할 수 있다면 씨감자를 준비할 필요도 없을 뿐 아니라 바이러스 같은 병원체에 감염될 위험성도 크게 줄일 수 있다. 그런데 왜 여전히 씨감자를 심는 걸까.
물론 감자에서도 씨앗을 얻을 수 있다. 꽃이 피고 토마토처럼 생긴 열매가 익으면 안에 씨앗이 여문다(감자와 토마토는 둘 다 가짓과 식물이다). 그런데 씨앗을 뿌려 나온 식물은 다들 제각각이라 덩이줄기인 감자의 크기나 개수에 편차가 크다. 작물로서는 치명적인 결함이다.
이는 오늘날 재배되는 감자의 이형접합성이 워낙 크기 때문이다. 이형접합성(heterozygosity)은 염색체 쌍에서 유전자의 대립형질이 서로 다른 정도다. 감수분열 과정에서 염색체 재조합이 일어나면서 게놈 구성이 제각각인 생식세포가 얻어지므로 이게 수정해서 맺히는 씨앗 역시 제각각이다. 게다가 오늘날 재배되는 감자는 대부분 염색체 4개가 쌍을 이룬 4배체라 이런 경향이 더 심하다.
수천 년 전 남미 안데스 산지에서 감자가 작물화될 때부터 농부들은 식물체의 특성을 유지하기 위해 씨감자로 이듬해 농사를 지었다. 일종의 복제본이므로 매년 같은 특성의 감자를 수확할 수 있었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체세포돌연변이가 축적되면서 이형접합성이 갈수록 커져 현대 육종학자들조차 씨앗으로 재배할 수 있는 감자 육종에 번번이 실패해 오늘에 이르고 있다.
○ 게놈 디자인으로 잡종 감자 얻어
국제학술지 ‘셀’ 7월 22일자에는 게놈 디자인 기술로 잡종 감자 개발에 성공했다는 선전시 소재 농업유전체학연구소가 주도한 중국 공동연구팀의 논문이 실렸다. 아직은 수확량이 상업 재배 품종에 못 미치지만 2~3년 안에 따라잡을 수 있을 것이라고 한다.
게놈 디자인(genome design)이란 게놈을 분석해 작물에 유리한 유전자와 불리한 유전자의 변화를 살펴보며 육종하는 과정이다. 따라서 작물의 형태(표현형)만 보는 기존 육종법에 비해 훨씬 효율적으로 작물을 개량할 수 있다.
연구자들은 토종 가운데 2배체 감자를 몇 가지 골라 자가수분을 통해 게놈의 이형접합성이 낮아지게 개량했다. 씨를 받아 심어도 작물의 특성이 일정하게 유지되려면 이형접합성이 낮아야 한다. 벼가 대표적인 예다.
지금까지 감자를 대상으로 한 시도는 번번이 실패했다. 자가수분으로 이형접합성이 낮아질수록 치명적인 유전자 돌연변이가 드러나 식물체가 제대로 자라지 못하거나 생식력을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연구자들은 자가수분에서 나오는 개체들 가운데 게놈 디자인으로 치명적 돌연변이가 숨어있는(염색체 하나에만 존재) 것들은 콕 집어 없애며 5세대에 걸쳐 개량한 결과 이형접합성을 5% 미만으로 낮춘 개체를 얻는 데 성공했다.
그런데 이렇게 나온 근교계(inbred line) 감자는 애초의 토종에 비해 식물체도 부실해졌고 달리는 감자도 작고 개수도 적었다. 유전자가 단순해지면서 나타나는 이런 현상을 근교약세(inbreeding depression)라고 부른다.
게놈 디자인 기법까지 써가며 오히려 더 부실한 감자를 만든 이유는 잡종 감자를 만들기 위해서다. 다른 계통의 근교계 감자를 여럿 만든 뒤 이들을 교배하면 잡종인 자식 세대 감자는 부모의 평균이 아닌 양쪽보다 더 우수한 특성을 보일 수 있다. 이를 잡종강세(hybrid vigor)라고 부른다. 부계와 모계에서 서로 꽤 다른 염색체를 받아 이형접합성이 커지면서 평균적으로 이로운 유전자의 영향은 늘어나고 해로운 유전자의 영향은 줄어들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게놈 디자인으로 만든 근교계 감자인 A6-26과 E4-63을 교배해 얻은 잡종 H1은 부모보다 식물체가 훨씬 튼실하고 감자도 크고 수확량도 최소 31% 더 많다. 그리고 잡종 감자 사이의 편차가 작았다. 그럼에도 잡종 감자는 여전히 널리 재배되는 감자에 비해서는 수확량이 10~15% 적다. 앞으로 좀 더 다양한 근교계 감자를 만들어 여러 조합으로 교배하면 더 우수한 잡종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되면 농민들은 씨감자 대신 두 근교계 감자를 교배해 얻은 씨앗을 뿌려 감자를 재배하게 될 것이다. 물론 잡종 감자에서 얻은 씨앗은 게놈이 제각각이라 이듬해에 쓸 수 없다. 종자회사에서 만든 잡종 씨앗을 해마다 사서 써야 한다는 말이다. 오늘날 많은 작물에서 일어나는 일이다. 혹자는 이에 대해 농민들이 매해 씨앗을 사게 하려고 종자회사들이 이런 조작을 했다고 비난하지만, 실제는 수확량이 많고 스트레스 저항성이 큰 잡종 작물의 어쩔 수 없는 특성이다.
난 가끔 찐 고구마나 감자를 주식으로 먹곤 한다. 보통 저녁에 밥 반 공기에 고구마나 감자 하나를 먹는다. 점심에 과식한 날은 저녁에 고구마나 감자 한두 개로 때울 때도 있다. 앞으로는 이런 날이 더 잦아질 것 같다.
남미의 2배체 재래종 감자(위 양쪽)는 게놈의 이형접합성이 커서 이들을 교배해 얻은 씨앗을 뿌려 나온 잡종은 감자 크기나 수확량이 개체마다 제각각이다(segregating F1 hybrids). 균일함을 유지하려면 영양번식이 불가피한 이유다. 반면 재래종을 게놈 디자인으로 육종해 얻은 근교계 감자(아래 양쪽)는 재래종에 비해 부실하지만(근교약세) 이들 사이의 잡종은 수확량도 많고(잡종강세) 균일하다(uniform F1 hybrids). 씨앗으로 농사를 지을 수 있다는 말이다. 셀 제공
(출처:https://www.dongascience.com/news.php?idx=488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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